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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탐방 윤동주 시인을 만나고 천진포자, 사이치킨과 계열사를 지나

 부암동은 웬지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지금도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지만 더 멀리 있는 곳 같은, 저 북쪽 어디쯤엔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건 아마도 청와대 근처라 옛 무시무시한 정권 시절의 두려움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근처에 가다가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생긴 무의식적 망각이요. 혹은 인왕산 자락에 깊이 파 묻힌 보이지 않는 도시 속 섬 같은 마을이어서 그런 걸까요? 아무튼 그런 부암동이 지금은 광화문과 서촌에서 이어지는 여러 군데 맛집과 경치 좋은 카페를 가지고 있는 핫한 장소로 거듭났죠. 사람들마다 부암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겠지만 아마도 모든 분들이 부암동에 단순히 맛집이 있어서 좋아하시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부암동에는 윤동주문학관과 환기미술관 그리고 옛 성벽과 창의문이 있습니다. 물론 인왕산 성벽길 따라 올라 가는 등산로도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만나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와 서울의 북쪽 경관을 보게 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카페로 알려진 클럽 에스프레소(문브렌딩으로 알려진 원두커피는 콜롬비아원두 40%, 브라질원두 30%, 에디오피아원두 20% 그리고 과테말라원두 10%의 배합으로 만들어진 커피하고 합니다. 에디오피아원두는 신맛이 보통 나므로 신맛은 조금 나고 브라질의 단 향이 있는 콜롬비아와 과테말라의 많이 쓰지 않은 고소한 맛이 나는 커피일 것 같습니다.)의 커피향을 맡지 않아도 계열사의 치킨 맛을 보지 않아도 이미 부암동의 팬이 되어 있을 겁니다.


 부암동은 삼청동과 북촌의 세련된 느낌보다는 꾸미지 않은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촌스럽다기보다는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특히 서촌이 발전(?)하고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분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부암동 치킨으로 유명한 계열사도 줄이 길어져서 드시고 가시려면 인내심을 필요로 하게 되었죠. 대신 서태후도 즐겨 먹었다던 천진포차는 여러 군데 분점이 생겨서 줄이 없거나 길지는 않습니다. 중국 관광객들은 삼청동을 포함해서 여러 군데를 돌아가며 팔아준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여유가 더 있으신 분은 주욱 더 올라가셔서 북악스카이웨이를 만나서 팔각정까지 걸어 올라가시면서 카페인 산모퉁이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커피와 시간의 향기를 느끼시거나 환기 미술관에서 도시에서 그리고 사람 속에서 멍든 외로움을 추스릴 수도 있겠습니다.


 부암동의 부암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부침바위가 있었던 곳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 바위에 자기 나이만큼 돌을 문지르면 손을 떼는 순간 돌이 바위에 덜컥 붙고 그럼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었답니다. 재미있죠? 도로를 내느라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혹시 어느 누군가가 가지고 간 것은 아닐지요? 너무 닳아서 없어졌거나. 지금은 딸이 더 낫다’.라고 많이들 하셔서 글쎄요. 또 부암동에는 무계정사와 석파정이 있는데 안평대군이 이곳은 꼭 무릉도원 같다고 해서 무계동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니 이 곳이 얼마나 옛 부터 수려한 동네였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 전에 사람들이 그리 찾지 않을 무렵엔 사는 분들은 물도 지고 올라가야 했던 동네로 압니다만 벌써 옛 이야기죠. 지금은 집 값이 올랐다고 좋으시냐 했더니 살기 좋아서 좋다고 하시던 할머님이 생각납니다. 저도 이 동네에서 살고 싶어집니다.  <“두산백과한국관광공사의 글을 참조했습니다.>

 

 

 부암동에서 계열사를 뒤로 하고 천진포자에서 만두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역시 맛있습니다. 가정만두(1,000원 더 비쌉니다.)가 베스트라고 해서 가정 만두를 주문했는데 고기만두가 더 나은 듯 하네요.


 잠시 창의문 뒤에서 벤치에 앉아 상념에 젖었습니다. 바람은 살랑거리고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이 문에는 칠 벗겨진 단청만이 천정에서 바람을 맞이하고 있네요. 이 문을 지나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만났습니다불운의 시대에 잘 못 태어난 천재 시인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읊조립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시인의 감수성이 단어 하나하나에 그리고 마침표 하나 하나에 묻어 납니다. (독립에 대한 의로움과 젊음의 야망을 낭만주의에 숨겨 놓은 것이라고 많은 분들이 얘기하시지만 저는 그냥 깊은 낭만 속에, 살랑이는 바람 속에 그리고 까르르 웃으며 옹기종기 사진을 찍고 있는 저 젊음 속에 시를 남겨두고 싶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윤동주 시인이 뭐라고 안 할 것 같군요.)